티스토리 뷰

반응형

옥포해전(옥포대첩)은 1592년 4월 15일(음력) 임진왜란 발발 후 육전 포함 첫승리입니다. 4월 30일 선조가 한양을 떠난 후 개성을 지나 평양에 도착한 5월 7일 이순신 장군은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옥포전, 합포전, 적진포전 등 세차례의 접전을 '옥포승첩'이라고 합니다. 적선 총 42척을 격파했으며 각종 노획품이 5칸 창고를 다 채우고도 넘쳤다고 하네요.

 

 

- 옥포해전

 

'도도'가 이끄는 왜적 정예 수군의 선봉은 4월 27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동래 감포, 사하 구평, 다대포 장림, 김해 등에서 살인과 방화 등 각종 만행으로 저지르고 5월 7일 아침 옥포에 도착했습니다.

 

가덕도에 적선이 있다는 원균의 정보에 따라 조선 함대는 거제의 송미포(현 남부면 다대리)로부터 조라포(현 옥포동), 지세포(현 일운면), 장승포를 돌아 옥포만으로 나아갔는데요. 옥포만에서 적을 발견하고 각종 총통화기를 쏘아 임진왜란 첫승리를 거뒀습니다.

 

 

- 합포해전

 

옥포에서 승리한 그날 오후 나무를 베고 물도 길어 오려고 15km떨어진 거제도 북쪽 끝의 영등포(현 장목면 구영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왜선 5척이 지나간다는 척후장의 보고를 접하고 영등포에서 30km떨어진 웅천땅의 합포 앞바다까지 적을 추격해 적선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왜적은 배를 버리고 도망쳤음)

 

 

 

 

- 적진포해전

 

5월 8일 진해 고리량에 왜적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이순신 장군은 안팎 여러 섬들을 두루 뒤지며 돝섬(현 마산합포구 저도)을 지나 적진포(현 통영시 광도면 적덕동)에 정박해 있던 왜선 13척 중 11척을 불태웠습니다.

 

▶ 관련글> 이순신 장군 해전 순서 및 3대 대첩 순서와 죽음, 전사한 해전 알아보자

 

 

옥포승첩은 임진왜란 발발 후 첫승리였습니다. 순천 대장선 사부 한사람만이 왼팔에 화살을 맞고 다쳤을 뿐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한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5월 10일 이순신 장군은 '제1차 옥포승첩을 아룁니다'라는 제목으로 선조에게 장계를 올렸는데요. 우리도 왜적을 무찌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전투였습니다. 선조는 5월 23일 포상 제1호로 이순신 장군에게 가선대부(종2품)의 직함을 내렸습니다.

반응형
반응형